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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 바다의 단세포동물이 어느날 한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먹이 섭취하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세포의 앞 몸통이 얼굴의 시초다. 입이 가장 먼저 모양을 갖추고 눈과 귀가 입 주위에 생겨났다. 뇌는 감각 정보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입과 눈 뒤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기나긴 진화를 거쳐서 13만 년 전 나타난 호모사피엔스의 모습이 바로 현생인류의 얼굴 시초다. 그 후 더 진화해 튀어나온 입이 들어가고 평평한 얼굴을 갖췄다. 입이 먹는 것 이외에 소통의 기능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얼굴은 더 평평해졌다. 골격, 피부색, 이목구비 크기와 위치, 윤곽, 홍채 무늬, 얼굴 체온 발산 등 인간의 얼굴은 소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소통은 곧 얼굴을 해석하는 것이다. 얼굴 해석은 곧 인간 생존의 핵심 기능이다. 생존을 위한 얼굴 해석의 강박이 관상학을 낳았고, 이는 범죄학과 연결되며 우생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종교와 신분의 낙인이 사라지고 사회적 관계가 폭증하면서 판단의 근거는 오직 외모가 되어갔다. 이제 얼굴은 본다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흉악범의 얼굴 공개 논란이나 CCTV확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얼굴과 관련한 권리가 바로 초상권이다. 이는 다시 프라이버시권과 퍼블리시티권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얼굴의 무단 이용에 따른 감정을 보호하는 것이고, 후자는 얼굴의 상업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주로 유명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프라이버시권이 논란의 핵심이다.
프라이버시는 딜레마다. 프라이버시와 언론의 자유 및 시민의 알권리가 충돌한다. 지나치게 보호되는 사생활은 권력이나 부패를 감시해야 할 보도의 자유를 위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의 안보, 시민들의 생명 및 재산의 안전과 대립되기도 한다. 테러나 마약, 납치 등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생체인식시스템이나 통신 감청이 합법화되고 있다. 예전에 있었던 지리산 조난객 사망사고처럼 지나치게 프라이버시 보호를 따지다 이동전화의 위치확인이 늦어 죽게 되기도 했다. 결국 흉악범의 얼굴을 보기 원하고, CCTV가 자신을 찍게 하는 건 바로 자신을 보호해 줄 것 이라는 이런 믿음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의 신체 정보적 ‘얼굴들’은 무한히 축적되어 이용되고 있다. 휴대전화는 위치와 통화 정보를 남기고, 교통카드나 신용카드 등도 초 단위로 행동이 기록된다. CCTV도 공공기관, 은행, 버스, 지하철,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없는 곳이 없다. 예전부터 정보는 권력이 개인을 감시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거기다 요즘은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을 등급화해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는 시시각각 위협받고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정보를 숨길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숨겨진 정보 뒤에는 테러와 범죄가 있고, 사고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라이버시에 관한 법률 원칙을 만들고 엄격하게 관리 돼야 한다. 프라이버시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데서 벗어서나 엄격한 원칙 아래 구체적인 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 CCTV 천국인 영국의 경우 카메라의 회전, 줌 여부, 특정 행동 등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고, 정보감독관 제도가 있다.
태초의 얼굴은 먹이를 위한 것이었고, 현재 진화한 얼굴은 소통을 위한 것이 됐다. 얼굴은 가장 원초적인 언어다. 그렇기에 현재의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을 관찰하려 애가 달은 것이다.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저 공포로 인한 자기 방어의 심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통을 위한 것이 생각한다. 인간은 절대 고립되어 선 살 수 없다.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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